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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로그 주인의 추억 창고
소설,시

무라카미 하루키 더 뉴요커 수록 단편 <Where I'm Likely To Find it>

by 타츠야 2007. 10. 30.

어딘가 그것을 찾을 것 같은 장소에서

from The New Yorker (Issue of 2005-05-02)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 의붓아버지는 삼년 전에 노면전차에 깔려 돌아가셨어요.” 여자가 말하고 잠시 멈추었다.

나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두 번 끄덕였다. 말이 멈춘 동안 나는 내 필통 속의 대 여섯개의 연필을 쳐다보며 얼마나 뾰족하게 갈려 있나 확인했다. 마치 골퍼가 알맞은 골프채를 조심스럽게 고르는 것처럼, 너무 뾰족하지도, 너무 뭉툭하지도 않은 알맞은 연필 하나를 골랐다.

“모든 게 당혹스러웠어요.” 여자가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만 의견을 가지며 메모장을 앞에 놓고 날짜와 그녀의 이름을 적으며 연필을 실험했다.

“도쿄의 서편에는 노면전차가 먆이 남아있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이제는 거의 버스로 바뀌었으니까요. 몇 대 남은 것들은 이제 지난 날의 추억 정도로만 남아 있어요. 그런데 그 중 한대가 제 의붓아버지를 죽게 했어요.” 그녀는 조용히 한숨지었다. “시월 일일 밤이었어요. 비가 많이 왔어요.”

나는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의 기본적인 사항을 적어나갔다. 의붓아버지, 삼년전, 노면전차, 폭우, 시월 일일 밤. 나는 뭔가 적을 때 매우 정확하게 적어나가려고 애쓴다. 그래서 전부 다 적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내 의붓아버지는 그때 많이 취해있었을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비오는 밤에 노면전차의 철로에 누워 잠들었을 리는 없어요.”

그녀는 다시 조용히 입술을 다물고 계속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마 내가 동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완전히 취해버린거예요.”

“의붓아버지께서 자주 그렇게 마셨던가요?”

“그러니까 자주 그렇게 완전히 정신을 잃도록 마셨다고 물으시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붓아버님께서는 한동안 그렇게 많이 드셨어요.” 그녀가 인정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구요. 그렇게 취해 철로 위에 드러누울만큼 많이 드시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철로위에 드러누울 정도라면 얼마나 많이 마셔야 하는 걸까. 나는 의아해졌다. 사람이 실제 주량보다 많은 양을 마셔서 그런 것일까 . 아니면 그가 애초에 그렇게 마시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러니까 그가 자주 술을 마시긴 하지만 늘 그렇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건가요?”

“내가 아는 한 그래요.” 그녀가 대답했다.

“실례가 아니라면 그쪽 나이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제 나이를 알고 싶어세요?”

“원치 않으시면 대답 안하셔도 됩니다.”

그녀는 집게손가락으로 콧등을 비볐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완벽한 코였다. 내 생각에 그녀는 최근에 성형수술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비슷한 버릇을 가진 한 여자와 만나곤 했었다. 그녀도 성형으로 코를 높였는데 늘 뭔가 생각할 때면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콧등을 매만지곤 했었다. 마치 그녀의 새 코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의뢰인의 눈길에서 나는, 어렴풋이 오럴섹스의 기억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내 나이를 속이거나 하고 싶진 않아요.” 여자가 말했다. “서른 다섯이예요.”

“그럼 의붓아버지는 몇 살에 돌아가셨죠?”

“예순 여덟에요.”

“어떤 일을 했죠? 직업 말입니다.”

“승려였어요.”

“그러니까 불교 사제요?”

“네. 스님이셨어요. 정토교요. 그는 토시마 구에 있는 절의 주지셨어요.”

“정말 충격이 크셨겠어요.” 내가 말했다.

“의붓아버님이 철로에서 돌아가신 것 말예요?”

“예.”

“물론 충격이 컸어요. 특히 남편은요.” 여자가 말했다.

나는 메모장에 몇가지를 추가로 적었다. 승려. 정토교. 68세.

여자는 소파 한끝에 앉아 있었고 나는 책상 너머로 회전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세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그녀는 세련되어 보이는 점잖은 녹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얘기해보세요.” 내가 말했다. “남편의 의붓아버지에 대해서요.”

“아니요. 의붓아버지에 대한 게 아니구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부정적으로 고개를 몇 번 살짝 저은 후 말했다. “제 남편에 관한 거예요.”

“남편도 승려인가요?”

“아뇨. 그는 ‘메릴 린치’에서 일해요.”

“금융투자회사요?”

“맞아요.” 그녀가 다소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다른 메릴 린치가 있겠어요. 남편은 증권중개인이예요.”

나는 연필끝이 얼마나 달았나 확인하며 그녀가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

“제 남편은 독자였는데 그는 종교보다는 무역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쉽게도 아버지처럼 종교인으로 성공하지 못했어요.”

어떤 것이 더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불교나 무역에 대해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있는 것으로 중립의 위치를 지켜나갔다.

“의붓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의붓어머니께서 저희 아파트로 이사오셨어요. 시나가와에 있는 아파트죠. 같은 건물이지만 다른 층으로요. 남편과 저는 이십 육층에 살고 어머니는 이십 사층에 살게 되었어요. 그녀는 혼자 계셨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절에 머물다가 다른 스님이 들어오시면서 그곳으로 이사오게 되었어요. 그녀는 예순 세 살이구요. 참, 제 남편은 마흔 살이예요. 별일 없다면 다음 달에 마흔 한 살이 되죠.”

나는 그것들을 적어 나갔다. 의붓어머니, 24층, 63세. 남편, 40세, 메릴 린치, 26층, 시나가와. 여자는 내가 다 적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의붓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의붓어머니는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비가 올때면 더 심해보이더라구요. 아마 남편이 비오는 날에 돌아가셔서 그럴거예요. 아주 당연한 일이죠. 제 생각에는요.”

나 역시 그런것같았다.

“증상이 심해지자 마치 어머니 머릿속의 나사못이 풀린 것 같았어요. 그녀는 우리집에 전화해서 남편보고 내려와서 보살펴 달라고 청했어요. 남편은 어머니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모든 게 잘 될거라고 말해주었어요. 남편이 없을 땐 제가 갔어요.”

그녀는 말을 잠시 멈추고 나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 의붓어머니는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 그녀에게 어떤 나쁜 감정도 가져본 적 없어요. 그건 그저 어머니가 과민한 편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녀는 늘 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곤 했어요. 이해 할 수 있겠죠?”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녀는 다리를 바꿔 놓으며 내가 새 메모장에 뭔가 쓰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적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일요일 저녁 밤 열시에 전화했어요. 이주쯤 전? 열흘쯤 전이었어요.”

나는 달력을 보았다. “구월의 셋째 일요일인가요?”

“맞아요. 셋째주. 어머니는 밤 열시에 전화를 걸어왔죠.”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다시 전화가 올것처럼 눈을 감았다. 만약 우리가 히치콕의 영화에서라면, 화면에 잔 물결이 일면서 회상장면으로 서서히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가 아니고, 회상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녀는 눈을 뜨고 말을 이었다. “남편이 전화를 받았어요. 그는 골프를 치러갈 계획이었지만, 새벽부터 큰 비가 와서 취소할 수밖에 없었죠.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또 마음대로 추측하고 있다는 것 나도 알아요.”

구월 3일, 골프, 비, 취소, 의붓어머니, 전화. 나는 이런 것들을 적어내려갔다.

“의붓어머니는 호흡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녀는 어지러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남편은 옷을 입은 후, 면도도 안하고 어머님의 아파트로 내려갔어요. 남편은 내게 오래걸리지 않을테니 아침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말했어요.

“남편은 뭘 입고 있었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콧등을 다시 가볍게 매만졌다. “반바지와 짧은 소매의 폴로셔츠를 입었는데 짙은 재색 셔츠였어요. 바지는 크림색이었구요. 둘다 ‘제이 크루’ 카달로그를 보고 산 거죠. 남편은 근시안이어서 늘 안경을 써요. 메탈로 된 아르마니 안경이요. 구두는 ‘뉴 발랑’제의 회색구두였구요. 양말은 신지 않았어요.”

나는 세세하게 적어내려갔다.

“남편의 키와 몸무게도 알려 드릴까요?”

“네, 도움이 될겁니다.” 내가 답했다.

“약 174cm에 몸무게는 71kg, 결혼하지 전에는 61kg정도였는데 몸무게가 좀 늘었어요.”

나는 이 정보들을 적어내려갔다. 나는 연필 끝을 확인하고 다른 연필로 바꾸었다. 새 연필을 손에 쥐고 그 느낌을 음미했다.

“계속 해도 될까요?” 그녀가 물었다.

“그럼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다리를 풀고 다시 다리를 겹쳤다. “어머니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팬케익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일요일 아침마다 팬케익을 만들어요. 남편이 일요일에 골프를 치러 나가지 않으면, 남편은 엄청나게 팬케익을 먹어대죠. 바삭한 베이컨을 곁들인 팬케익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러니 십 킬로그램이나 찌겠죠. 나는 생각했다.

“이십 오분 후, 남편은 제게 전화를 해왔어요. 어머니는 진정됐고 이제 올라가겠다구요. ‘나 배고파’ 라고 했어요. ‘가자마자 먹을 수 있게 아침 준비 해놓자구’ 그래서 난 프라이팬을 데워 팬케익과 베이컨을 굽기 시작했죠. 메이플 시럽도 알맞게 데우구요. 팬케익은 만들기 어렵지 않지만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죠.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남편은 집에 오지 않았어요. 팬케익 몇조각이 접시 위에서 식어가고 있었어요. 저는 어머니께 전화해서 남편이 계속 거기 있는지 물어봤어요. 하지만 한참 전에 떠났다더군요.”

그녀는 무릎 위에 걸치고 있던 형이상학적인 무늬의 손수건을 매만졌다.

“제 남편이 사라졌어요. 공기 중에서 없어졌어요. 아직도 소식이 없어요. 남편은 이십 사층과 이십 육층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렸어요.”

“경찰에 연락은 해보셨어요?”

“그럼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입술이 초조하게 오그라들었다. “남편이 한시까지 들어오지 않자 경찰에 전화했어요. 그러나 남편을 찾으려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지방경찰서의 순찰경관 한명이 와서, 가정 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사하고 갔을 뿐이예요. ‘만약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요.’ 그가 말했어요. ‘관할경찰서에 가서 실종자 신고 파일을 작성하세요.’ 경찰관은 아마 남편이 어딘가에서 아무 생각없이 헤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자신의 삶에 진저리가 나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라 생각했겠죠. 그러나 그건 조금 엉뚱한 얘기예요. 내가 보기엔 내 남편은 완전히 빈 손으로 어머니 아파트로 내려갔어요. 지갑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고, 신용카드도, 시계도 없이요. 게다가 면도도 안했다구요. 제발, 그리고 그는 제게 전화해서 팬케익을 준비해놓으라고 했단 말예요. 누가 집을 뛰쳐 나가면서 전화해서 팬케익을 만들어 놓으라고 하겠어요? 그가 그랬을까요?”

“정확히 그렇습니다.” 내가 동의했다. “그러면 말해보세요. 남편분이 이십 사층으로 내려갔을 때, 계단을 이용했습니까?”

“남편은 엘리베이터는 안타요. 그는 엘리베이터를 싫어해요. 그런 좁은 공간에 가둬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십 육층의 고층 아파트에서 살아요?”

“네. 하지만 남편은 언제나 계단만 이용했어요. 남편은 전혀 싫어하지 않았어요. 운동도 되고 몸무게를 줄이는데도 도움이 되었어요. 물론 그건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팬케익, 10Kg, 계단, 엘리베이터, 이런 것들을 메모장에 적었다.

“그럼 이제 정리가 되겠죠?” 그녀가 말했다. “일을 맡으시겠어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내가 바라는 바였다. 나는 일정을 확인하고 서류를 뒤적이는 체 하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즉각 일을 맡겠다고 하면 의뢰인이 마음속으로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를테니까.

“다행히도, 오후 늦게까지 시간이 있습니다.” 시계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열한시 삼십 오분이었다. “괜찮다면 아파트 건물에 저와 같이 가주시겠어요? 남편이 사라진 마지막 장소를 가보고 싶습니다.”

“좋아요.”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이 일을 맡아 주실거죠?”

“그렇습니다.” 내가 응답했다.

“하지만 우린 아직 비용얘기를 안했잖아요.”

“돈은 안주셔도 됩니다.”

“네?”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반문했다.

“저는 아무 것도 청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설명하고 웃었다.

“하지만 이건 당신 직업이잖아요.”

“아뇨.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전문적인 직업은 아니구요. 저는 단지 봉사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봉사자요?”

“맞습니다.”

“그래도 비용이 들지 않을까요?”

“아무 것도 필요없습니다. 저는 봉사자로만 일하고 있어서 어떤 종류의 댓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여자는 여전히 당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저는 다른 경로의 수입이 있습니다.” 내가 설명했다. “저는 돈을 바라고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길을 통해 사라진 사람들 말입니다. 그 길에 가본 적이 있느냐하면, 그건 좀더 복잡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서는 제법 익숙한 편입니다.”

“그럼 어떤 신앙 같은 건가요? 아니면 어떤 종류의 뉴에이지 같은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어떤 종교나 뉴에이지 그룹에도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신발을 쳐다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녀는 자신의 송곳처럼 뾰족한 힐을 사용해 나를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은 항상 제게 공짜인 것은 믿지 말라고 말했어요.” 여자가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무례한 건 줄 알지만 그러나 남편은 그런 건 전부 함정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대부분의 경우에, 저 역시 남편분에게 동감합니다.” 내가 말했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료라는 것은 신뢰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든지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그녀는 루이비통 핸드백을 들어 정교한 누름장치를 사용해 가방을 열어서 두껍게 봉해진 봉투 하나를 꺼냈다.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보기에 꽤 많아 보였다.

“약간의 사례금을 준비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례금이나 선물이나 어떤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규칙입니다. 만약 제가 요금이나 선물을 받는다면 그것은 제게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만약 정 지불하시고 싶으시다면 A.S.P.C.A., 교통사고 희생자 기금(the Fund for Traffic Victims) 이나 고아원 같은 그런 곳에 기부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좀 기분이 나을 것 같은데요.”

여자가 이마를 찡그리며 크게 숨호흡을 하고는 핸드백 속으로 두툼한 봉투를 되넣었다. 그녀는 다시 콧등을 매만지고 나를 쳐다보았는데 마치 앞으로 뛰어 올라 스틱을 물 준비가 되어 있는 한 마리의 리트리버처럼 보였다.

“당신 일이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죠.” 그녀가 약간은 건조한 톤으로 말했다.

나는 끄덕이며 내 닳은 연필을 필통에 되돌려놓았다.


뾰족한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나를 그녀가 사는 아파트로 데려갔다. 그녀는 그녀가 사는 2609호와 의붓어머니가 사는 2417호를 알려주었다. 널찍한 난간이 두 층 사이를 잇고 있었고 나는 가볍게 두 층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오분 정도를 거닐었다.

“제 남편이 이 아파트를 산 이유 중 하나는 이 계단이 넓고 햇빛이 잘 들어서였어요.” 그녀가 말했다. “대부분의 고층 아파트는 계단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잖아요. 넓은 계단들은 공간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대부분의 거주자는 엘리베이터를 더 좋아하지만, 많은 아파트 개발자들은 매력적인 공간에 돈을 아끼지 않아요. 서재나, 대리석 로비처럼요. 제 남편 역시 계단이야 말로 결정적인 요소라고 했어요. 계단이야말로 곧 건물의 척추라고 말하곤 했었죠.”

정말이지 그것은 주목 할만한 층계였다. 이십오층과 이십 육층 사이를 오르다 보면, 그림액자가 걸려있고, 소파가 있고, 폭이 넓은 거울이 있고, 입식 재떨이가 있고 화분이 있었다. 창문 밖으로 밝게 빛나는 푸른 하늘과 몇 점의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창문은 봉해져 있어 열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매 층마다 이런 공간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뇨. 각 다섯층마다 작은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어요. 매 층마다는 아니구요.” 그녀가 말했다. “제 의붓어머니의 아파트도 한번 둘러 보시겠어요?”

“지금은 말구요.”

“남편이 사라진 이후로 어머니는 더욱더 상태가 악화되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손을 떨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나 저에게나 정말 큰 충격이예요. 상상할 수 있을거예요.”

“물론입니다.” 나는 동의했다. “어머니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군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알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남편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거든요.”

“이해합니다.” 내가 말했다. “이 층계를 자주 이용하시나요?”

“아니요.” 눈썹을 약간 치켜올리며 그녀가 말했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통 저는 엘리베이터를 타요. 남편과 함께 나갈 때는 남편이 먼저 내려가고 저는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가 로비에서 만나요. 같이 집에 들어올 때면 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남편은 걸어서 올라와요. 하이힐을 신고 이런 층계를 오르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니까요.”

“그럴 것 같군요.”

나는 혼자 이 일을 조사하고 싶어서 그녀에게 부탁해 건물 관리자에게 이렇게 얘기해달라고 했다. “이십 사층과 이십 육층 층계 사이에 서성이는 남자는 부험조사차 나온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지시했다. “만약 누군가 내가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에 연락한다면 곤란해지니까요. 나는 어쨌든 딱히 여기서 빈둥거리고 있을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죠.”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위층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힐이 울리는 소리는 마치 불길한 전언을 전하며 톡톡치는 것같이 들렸다. 그리고 결국 정적 속으로 멀어져갔다.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내가 맨먼저 한 일은 이십 육층에서 이십 사층까지 세 번쯤 되풀이해서 걷는 일이었다. 첫 번째는 보통 걸음으로 걷고 두 번째는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며 나를 둘러싼 것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나는 눈가리개를 한 사람처럼 집중했다. 모든 것을 유심히 노려보려 애썼다. 오히려 문제는 그곳이 너무나 잘 닦여 있어서 거기엔 한 점의 흔적도 얼룩도 없었고 재떨이에는 꽁초도 하나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쉬지 않고 아래 위로 오르내리다 보니 치쳐버려서 소파에 앉아 잠시 쉬었다. 소파는 비닐로 덮여있었는데 아주 고급제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의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그런 곳에 소파를 놓을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관리자는 센스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소파에는 주름 하나 없었고 햇빛이 드는 각도에 맞춰 완벽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거기에 잠시 앉아 거울에 반사되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마 그 일요일에 그녀의 남편, 증권 중개인 역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 역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으리라 생각했다. 면도하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나는 물론, 면도를 했다. 하지만 머리는 조금 길어 있었다. 내 귀 뒤로 구부러져 올라간 머리카락은 마치 강을 헤엄쳐 건너온 사냥개의 긴 털처럼 보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발관에 가야지 하고 있었다. 나는 내 바지의 색깔이 구두와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이 없게도 한쌍의 양말 역시 복장과 맞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어쨌든, 나는 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마치 인류나 종교 따위엔 신경 쓰지 않는 마흔 다섯 살 쯤의 이발사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자 폴 고갱 역시 증권 중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에 생을 바쳤고 그래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둔 채 혼자 타히티로 떠났다. 잠깐만.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니다. 고갱은 지갑을 두고 오진 않았고 혹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하나쯤 가지고 떠났으리라. 그는 어쨌든 타히티로 떠났다. 나는 고갱이 사라지기 전 자신의 아내에게 “여보, 금방 돌아올테니 팬케익을 준배해두라구” 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만약 누군가 사라지기로 마음 먹었다면 아마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서 떠났을 것이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며 맛있는 팬케익을 굽는 생각을 했는데 그 때문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나는 완전히 집중해서 다시 그 장면을 재현해내려 애썼다: 너는 마흔 살의 증권 거래인이고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다. 밖에는 비가 많이 오고 있고 너는 핫케익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식욕이 솟아난다. 나는 작은 사과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당장 데니스에 가서 팬케익을 시켜 먹고 싶었다. 나는 차타고 오는 중에 데니스의 간판을 보았다. 아마 걸어가도 멀지 않은 곳이리라. 데니스의 팬케익이 맛있었던가? 버터와 시럽이 내게 충분하도록 뿌려지지 않았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진실은 그런거다. 나는 팬케익의 진정한 팬이다. 침이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고 팬케익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나는 환상의 구름 조각을 전부 날려버렸다. 팬케익은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스스로에게 일렀다. 계속 일을 해야 하니까.

“남편에게 다른 취미가 더 있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좀 우습겠지? 그림을 그리겠다고 가족을 버린 남자들은 일요일에 골프같은 건 치지 않아. 고갱이나 반 고흐나 피카소가 골프 슈즈를 신고 제 10홀에서 무릎을 꿇고 퍼팅을 고심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서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한 시 삼십 이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내 머릿속의 한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완전히 텅 빈 마음으로. 그런 후 나는 눈을 떠서 손목시계를 다시 쳐다보았다. 한시 오십 칠분이었다. 이십 오분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쁘지 않아, 하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시간을 조금씩 깎아 먹는 무의미한 행동.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나는 다시 거울을 보며 평상시와 다름없는 내 자신을 보았다. 내가 오른 손을 들면, 내 반사된 모습은 왼쪽 손을 들었다. 내가 왼손을 올리면 반사된 모습은 오른 손을 들었다. 내 오른 손을 내리면, 마치 왼손도 재빨리 손을 내리는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런 것이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이십 오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날마다 오전 11시쯤 그 계단을 찾아갔다. 건물 관리자와 나는 곧 익숙해졌다. (내가 그에게 초콜릿을 한 상자 사주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대로 건물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통틀어 약 이백 회 정도 이십 사층과 이십 육층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지칠 때면 나는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거나 거울 속의 내 모습을 확인하였다. 나는 이발소에 가서 단정하게 머리를 손질했고, 세탁을 끝마쳤고, 바지와 양말을 옷에 맞게 잘 갖춰 입었고, 막연하게나마 사람들이 내 뒤에서 험담할 거리를 줄여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힘들게 살펴보았지만 나는 단 하나의 단서도 얻지 못했고, 하지만 용기를 잃지는 않았다.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 것은 야생동물들을 길들이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것은 인내심과 집중을 요한다. 직관에 의존하기보다는 말이다.

내가 그 건물에 매일 드나들면서, 나는 그곳에 계단을 이용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사탕껍데기와 재떨이의 말보로 꽁초와 버려진 신문을 찾을 수 있었다.

일요일 오후, 나는 계단 위로 뛰어가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삼십 대의 작은 체구의 사나이였는데 좀 심각해 보였고 녹색 조깅 복장과 아식스 스니커를 신은데다 큰 카시오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말했다. “시간 좀 있으신가요?”

“예.” 손목시계의 버튼을 누르며 남자가 말했다. 그는 두어번 크게 숨호흡을 했다. 그의 나이키 상의의 가슴부분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항상 그렇게 이 계단을 뛰어 오르시나요?”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삼십 이층까지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올때는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계단을 내려가며 달리는 것은 위험하거든요.”

“매일 하세요?”

“아뇨, 일이 매우 바빠서요. 주말에만 몇 바퀴씩 뜁니다.

“이 건물에 사나요?”

“그럼요.” 그가 말했다. “십칠층에 살아요.”

“혹시 쿠루미자와씨를 아시나요? 이십 육층에 사는 분인데요.”

“쿠루미자와씨요?”

“그는 증권 중개인이구요, 금속테의 알마니 안경을 썼구요, 항상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지요. 키는 174쯤 나이는 마흔살이구요.”

달리던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예, 그 남자를 압니다. 한번 얘기해본 적이 있어요. 계단에서 달리다가 가끔 지나쳐가곤 했어요. 그가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역시 엘리베이터를 싫어해서 계단을 이용하는 몇몇 사람 중 한 명이죠. 맞아요?”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내가 답했다. “그 사람 외에도 매일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있나요?”

“예.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주 많지는 않구요. 아마, 하지만 주기적으로 오는 사람이 몇 명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저처럼 계단을 뛰어 오르며 달리는 사람이 두 명 정도 더 있습니다. 여기만큼 뛰기 좋은 계단은 좀처럼 없죠. 그래서 여기서 뛰는 거죠. 그리고 또 몇몇 사람이 운동삼아 계단으로 걷는 분이 있습니다. 아마 다른 아파트보다 이 곳에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빛이 잘 들고 널찍하고 깨끗하니까요.”

“그런 분들 중 이름을 아는 분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저 그들의 얼굴만 알아요. 우리는 인사를 하고 서로 지나쳐갑니다. 그래서 이름은 모릅니다. 이곳은 큰 건물이니까요.”

“그렇군요. 아무튼,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말했다. “붙잡아서 실례했습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그 남자는 스톱워치의 버튼을 누른 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화요일에, 내가 소파에 앉아 있을 때, 한 노인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칠십 대 중반, 회색 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샌달을 신고 헐렁한 긴 소매의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의 옷은 얼룩 하나 없고 단정하게 다림질 되어 있었다. 노인은 키가 컸고 자세가 곧았다. 그는 마치 최근에 은퇴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내가 답했다.

“여기서 담배를 좀 펴도 되겠소?”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담배 태우세요.”

노인은 내 옆에 앉아서 바지 주머니에서 세븐 스타를 꺼냈다. 그는 성냥을 켜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성냥불을 끄고 재떨이에 놓았다.

“나는 이십 육층에 산다오,” 천천히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그가 말했다. “내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요. 그들은 늘 아파트에 담배 냄새가 난다죠, 그래서 나는 항상 여기에 와서 담배를 피운다오. 담배 하나 피시겠소?”

“저는 십이년 전에 끊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 끊고 싶다오.” 노인이 말했다. “나는 하루에 두세개 정도의 담배를 피우니 그리 많이 피우는 건 아니지. 젊은이는 이해할거야. 나는 담배를 사러 가게에 갈 때마다 이곳에 와서 담배를 피운다네. 시간 보내기에는 딱 좋지. 나오느라 운동도 되고 이곳에서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네.”

“그러니까 건강을 위해 담배를 피신다는 얘기시군요.” 내가 말했다.

“정확히 그렇다네.” 노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전에 이십 육층에 사신다고 하셨던가요?”

“그렇다네.”

“혹시 쿠루미자와 씨라고 아세요? 2609호에 사는데요.”

“그럼 알지. 안경을 쓰고 살로몬 브라더스인가 어딘가에서 일하는 친구.”

“메릴 린치입니다.” 내가 정정해주었다.

“메릴 린치. 거기던가?” 노인이 말했다. “그 친구와 여기서 이야기 하곤 했어. 그도 가끔 이 소파를 이용했지.”

“여기서 무엇을 하던가요?”

“정확히는 모르겠소만, 그냥 여기에 앉아서 멍하게 공간을 바라보는 거지. 그는 담배는 안폈던 것 같소.”

“늘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죠?”

“멍하게 있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군.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잖아, 안그렇소? 생각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니까 생각하는 게 맞지 않소? 내 생각엔, 살기 위해 생각하는 거라고 믿고 있지. 존재하기 위해 생각한다던 데카르트와는 반대로 말이오. 무심코 공간을 쳐다보다보면 실제로는 그 반대 효과를 가지게 되지. 어쨌든 그것은 어려운 질문이구료.”

노인은 담배를 한번 강하게 빨아 당겼다.

“쿠루미자와 씨가 직장이나 가정생활에 대해 뭔가 얘기하기도 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젓고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었다. “확신하건대, 물은 언제나 가장 짧은 경로로 흘러내리기 마련이지. 하지만, 가장 짧은 경로가 사실은 물이 흘러서 만들어 낸 것이라네. 인간의 사고 진화 방식은 그것과 비슷하다네. 결국에는 말이지.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하지만 난 젊은이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네. 구루미자와 씨와 나는 한번도 그런 깊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는 그저 인사치레나 하며 지냈다네. 가령 날씨, 아파트 연합의 규칙 뭐 그런 가벼운 것들에 대해서 말일세.”

“이해합니다.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

“가끔은 우리에게 말이 필요가 없다네.” 내 말은 듣지도 못한 것처럼 노인이 말했다. “오히려 말이 우리를 필요로 하지. 만약 우리가 여기에 없다면, 말은 완전히 그 기능을 잃고 말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그것들은 결국 말하지 못한 말이 되고 마는 거라네. 말해지지 않는 말은 더 이상 말이 아니니까.

“맞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불교의 선(禪) 개념 같은 것이겠죠.”

“그렇다네,” 노인이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그의 아파트로 올라갔다. “그럼 또 보세,” 그가 말했다.

“네.” 내가 대답했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번째의 금요일 오후, 나는 이십 오층과 이십 육층 사이를 지나 가다가, 소파에 앉아 거울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어린 소녀를 보았다. 그 아이는 갓 초등학교를 들어갔을 만한 나이로 보였다. 그 아이는 핑크색 티셔츠와 짧은 청바지를 입고 작은 녹색 배낭을 등에 매고 있었고 무릎에는 모자가 놓여 있었다.

“안녕.” 내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소녀가 노래를 멈추고 말했다.

나는 소녀 옆에 소파에 앉고 싶었지만 혹시 누가 지나가다 우리를 보기라도 하면 아마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대신 소녀와 약간 거리를 두고 창턱을 기대었다.

“수업은 마쳤니?” 내가 물었다.

“학교 같은 건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요.” 아이는 불확실한 단어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그 얘긴 그만 두자.” 내가 말했다. “이 건물에 사니?”

“네.” 아이가 말했다. “이십 칠층에 살아요.”

“너 설마 계단을 걸어 올라다니진 않겠지?”

“엘리베이터는 고약해요,” 소녀가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고약해서 나는 이십 칠층까지 걸어 다녀요.” 아이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크게 끄덕였다.

“힘들지 않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 알아요? 계단에 있는 거울들 중에서요, 이게 가장 잘 나와요. 우리 아파트의 다른 거울 같지 않고 말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한번 거울을 쳐다보세요.” 소녀가 말했다.

나는 한걸음 옮겨서 거울을 마주 보고 서서 잠시 동안 내 반사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확실히 자세히 보니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평소 내가 보던 거울 속의 모습 과는 약간 차이가 있어 보였다. 거울 속의 나는 볼이 약간 통통하고 그리고 좀 더 행복해 보였다. 마치 방금 맛있는 팬케익 한 조각을 먹어 치우기라도 한 것처럼.

“강아지 키워요?” 소녀가 물었다.

“아니, 안 키워. 대신 열대어를 키워.”

“흠,” 아이가 말했다. 열대어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강아지를 좋아하니?” 내가 물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이는 있어요?”

“아니, 없어,” 내가 대답했다.

아이는 나를 수상하게 쳐다보았다. “엄마는 아이가 없는 남자와는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는 그런 부류들은 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했거든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야,”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 역시 엄마 얘기가 맞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는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돼.”

“하지만, 아저씨는 이상해 보이지 않는데요.”

“이상한 사람은 아니야.”

“고추를 꺼내 보이거나 하진 않을 거죠?”

“그럼.”

“아이들 팬티를 수집하거나 하지도 않죠?”

“당연하지.”

“뭔가 수집하는 것이 있어요?”

나는 거기에 대해 생각해봐야 했다. 나는 현대 시집의 초판본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런 얘기를 끌어오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았다. “없어. 아무 것도 모으는 건 없어. 너는 어때?”

소녀는 생각하더니 두어번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아요.”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요, 미스터 도넛에서요 어떤 도넛을 제일 좋아하세요?”

“올드패션드,” 나는 즉시 대답했다.

“그게 뭔지 몰라요.” 소녀가 말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요? 나는 풀 문스와 버니 휩이 좋아요.”

“그런 것은 못 들어 봤는데.”

“과일과 향긋한 콩 페이스트가 들어간 거예요. 정말 맛있어요. 그런데 엄마는 그렇게 단 것을 많이 먹으면 벙어리가 된대요. 그래서 그것들을 많이 사주질 않아요.”

“그것 정말 맛있겠구나.”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여기서 뭘 해요? 어제도 봤는데.” 소녀가 말했다.

“뭔가 찾고 있는 중이란다.”

“그게 뭔데요.”

“나도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그건 문 같은 거야.”

“문?” 소녀가 따라했다. “어떤 종류의 문이요? 문도 여러 모양과 색상이 있잖아요.”

난 생각해보았다. 어떤 모양과 색상의 것일까? 그것을 생각하자, 나는 여지껏 문의 형태와 색상 같은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잘 모르겠어. 어떤 모양과 색상일지 모르겠구나. 아마 그건  꼭 문이 아닐지도 몰라.”

“그럼 그게 우산이나 그 비슷한 건가요?”

“우산?” 내가 말했다. “흠. 우산이 아닐 이유도 없어. 그럴 지도 몰라.”

“하지만 우산과 문은 형태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잖아요, 그리고 쓰임새도 틀리구요.”

“그래, 맞아. 하지만 언젠가 그것을 보게 된다면 그때는 알 수 있을 거야. ‘맞아. 바로 이거야!’ 하고 말이야. 그것이 우산이건, 문이건, 아니면 도넛이건 간에 말이야.”

“흠.” 소녀가 말했다. “오랫동안 찾고 있었어요?”

“오랫동안. 네가 태어나지 전부터.”

“정말이요?” 아이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좀 도와줄까요?”

“그래 주면 좋지.” 내가 말했다.

“그럼 내가 그걸 한번 찾아 볼게요.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문이나 우산이나 도넛이나 코끼리 같은 거겠죠?”

“바로 그거야.” 내가 말했다. “만약 보게 되면 그게 바로 그것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재밌게 들리는데요.” 아이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가봐야 해요. 발레 레슨이 있거든요.”

“다음에 보자.” 내가 말했다. “얘기해줘서 고맙구나.”

“좋아한다던 도넛 이름이 뭐랬죠?”

“올드패션드.”

이마살을 찌푸리며 소녀는 “올드패션드”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보았다. 그런 다음 일어나서 윗층으로 올라가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나는 눈을 감고 스스로를 공기의 흐름에 던진 후 시간이 의미 없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일요일 아침, 나는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저희 남편을 찾았습니다.” 안부인사는 생략한 채, 그녀가 말했다. “어제 정오쯤에 경찰로부터 연락받았어요. 남편이 센다이 역의 휴게소 벤치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 했다구요. 그는 돈도 없었고 신분증도 없었대요. 하지만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은 자신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기억해 냈대요. 나는 바로 센다이로 가서 확인했습니다. 제 남편이 맞았어요.”

“그런데 왜 그가 센다이에……?”

“남편도 왜 거기에 갔는지 기억이 없대요. 역무원이 흔들어 깨우자 벤치 위에서 깨어났어요. 어떻게 돈도 없이 센다이까지 갔는지, 어떻게 지난 이십 일 동안 뭘 먹었는지 남편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어요.”

“옷은 어떤 것을 입고 있던 가요?”

“아파트에서 사라졌을 때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수염이 많이 자라 있고 게다가 몸무게가 십 킬로그램이나 빠져 있었어요. 안경도 어딘가에서 잊어 버렸구요. 저는 지금 센다이의 병원에서 바로 전화하고 있는 중이예요. 의사들이 여러 가지 검사하고 있어요. CT촬영, X-레이, 신경 검사 같은 거요. 남편의 상태는 괜찮아 보이고, 육체적으로 상처도 없어요. 하지만 기억을 하지 못해요. 남편은 어머니의 집을 떠나 계단 위를 걸었던 것만 기억하고 그 이후는 전혀. 어쨌든, 우리는 내일이면 도쿄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잘 된 일이군요.”

“남편을 찾을 수 있게 노력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진심으루요. 일이 이런 식으로 해결되어서 계속 조사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럴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모든 게 정말 정신없고 이해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남편이 안전하게 돌아와 주었으니 그걸로 족해요.”

“그럼요.” 내가 말했다. “그게 중요한 거니까요.”

“그런데 아무 것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다는 것 정말이예요?”

“처음 만났을 때 말씀드렸듯이, 저는 어떤 종류의 사례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걸로 불편해 하지 마세요. 마음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침묵. 서로의 이해에 접근하자 새로운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내 방식대로 일했고, 이제야 찾아온 이 고요함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럼 잘 지내요.” 여자가 마지막으로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톤은 어떤 상징성을 띄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수화기를 놓았다. 잠시 그 자리에 앉아서 새 연필을 깎으며 내 앞에 놓인 빈 메모장을 쳐다보았다. 하얀 메모장은 방금 세탁소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하얀 종이를 보며 기분 좋게 낮잠을 자던 얼룩 고양이가 몸을 쭉 펴는 것을 떠올렸다. 그런 상상? 하얗게 세탁된 종이 위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를 생각하며 나는 기분이 편해졌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 그녀가가 얘기한 중요한 점들을 조심스럽게 메모장에 하나 하나씩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센다이 역, 금요일 정오, 전화, 십 킬로그램이 빠짐, 같은 옷, 안경을 잃다, 이십 일 간의 기억을 잃다.

이십 일 간의 기억을 잃다.

나는 책상 위에 연필을 놓고 몸을 뒤로 해 의자에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천장에는 여기 저기 불규칙한 얼룩이 보였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그것은 마치 별자리 그림처럼 보였다. 이 상상 속의 별빛이 빛나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나는 다시 담배를 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내 머릿속은 그녀의 하이힐이 계단을 걸으며 내는 또각 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쿠루미자와 씨.” 나는 천장의 구석을 향해 소리 냈다. “진짜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이 발견한 아름다운 삼각형 세상의 세 면을 떠나서 ―불안증에 시달리는 구부러진 의붓어머니와, 당신의 아내와, 그녀의 송곳 같은 하이힐과, 메릴 린치 같은 좋은 회사로.”

나는 계속 찾을 것인가 생각한다. 어디쯤엔가, 내가 찾는 그것은 문처럼 생긴 것일까? 아니면 좀 더 우산 같은 것일까? 도넛 같은 것일까? 코끼리 같은 것일까? 계속 찾다보면 결국에는, 내 바람일 뿐이지만,  어딘가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에 가게 될 것이다.



원제: どこであれそれが見つかりそうな場所で

Translated, from the Japanese, by Philip Gabriel. Where I'm Likely To Find It

Translated, from the English, by guwapu

ps : 개인적으로 참 기억에 남을만한 단편중에 하나 하루키에 글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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